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문예계 ‘지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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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혜 미술사가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
아직 와세다대 법학부 학생이던 22세의 전형필이 노년의 오세창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일이었다.전쟁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의 은유다.
전쟁터의 어른들에게 촉구한다.판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실이 가혹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제발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방의 벽에는 아이들이 괴물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